[MLB스코프] 낮은 기온이 야구에 미치는 영향

촉광        작성일 01-22        조회 4,656     

2013년 53홈런을 터뜨린 크리스 데이비스는 이듬해 첫 19경기에서 홈런 하나를 때려내는 데 그쳤다. 볼티모어 지역지 <볼티모어선>은 시즌 초반 데이비스의 실종된 홈런을 조명하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볼티모어는 디트로이트, 뉴욕, 보스턴 원정 경기를 소화했는데, 하나같이 모두 날씨가 추운 지역들이었다. <볼티모어선>은 보스턴 원정 시리즈 동안 데이비스의 타구가 펜스 앞에서 갑자기 힘을 잃고 잡히는 광경이 꽤 목격되었다는 증언도 실었다. 데이비스도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변명하는 것을 원하지 않겠지만, 손은 얼어있고 타구는 뻗질 않아요. 투수들이 분명히 이점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계속 경기를 하면서 방법을 찾아야겠죠. 하지만 추운 날씨가 초반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디트로이트에서는 비까지 내렸어요. 시즌 첫 달은 항상 힘듭니다. 특히 우리처럼 겨울 같은 날씨에서 경기를 해야한다면 말이죠."

로버트 어데어의 저서 <야구의 물리학>에 의하면 기온이 섭씨 5도 정도 올라갈 시 타구 비거리는 약 1.2m가 늘어난다. 온도가 상승하면 공기 밀도가 낮아져 그만큼 공기의 저항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타구 비거리가 늘어날 때 홈런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리노이 대학교 물리학 교수이자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에 '지구 온난화와 홈런의 연관성'에 대한 글을 기고했던 앨런 네이선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했다. 네이선은 "그동안 수집된 데이터를 살펴봤을 때, 화씨 10도마다 약 2.5피트(0.762m) 수준의 거리 변화가 일어난다"고 전했다. 네이선은 "미미한 수치로 여겨질지 몰라도 4월과 8월의 평균 기온 차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 변화는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기 역학 효과(aerodynamic effect)에 기반해 "영상 1.7도에서는 영상 21.1도보다 타구 비거리가 10피트(약 3.05m) 정도 짧아진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매사추세츠 대학에서는 기온과 타구 속도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서늘한 공간과 후덥지근한 공간을 나눠 두 곳의 온도를 4.4도와 48.9도로 설정해뒀다. 그 결과 서늘한 공간에서 날린 타구가 후덥지근한 공간보다 약 2% 정도 타구 속도가 덜 나왔다. 이 보고에 따르면 후덥지근한 공간에서 기록한 비거리 400피트가 서늘한 공간에서는 392피트로 축소될 수 있다. 이는 홈런과 뜬공의 차이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거리다.

지난해 가장 추운 날씨에서 진행된 경기는 4월24일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양키스와 디트로이트전이었다. 경기 시작 시 발표된 기온이 1도가 채 되지 않았다(0.6도). 여기에 바람까지 불면서 체감 온도는 더 떨어졌다. 미겔 카브레라, 세스페데스, 엘스버리, 스티븐 드류는 얼굴과 목을 덮는 안면 마스크를 착용해 노출하는 부위를 최소화했다(그와중에 브렛 가드너는 반팔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이 날 양팀 타선은 도합 6안타 3득점을 올렸다(양키스 3안타 2득점/디트로이트 3안타 1득점). 득점권에서는 양키스가 10타수 무안타, 디트로이트가 5타수 무안타에 머물렀다. 추위 때문에 야수들의 몸이 굳어진 것이 경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와 달리 양팀 선발투수인 다나카와 아니발 산체스는 나란히 6.1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다나카는 경기 후 추운 날씨를 언급하면서 "고등학교 때 살았던 곳이 정말 추웠다. 그 시절 감각을 떠올리면서 공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 날 다나카와 산체스를 포함해 지난시즌 '10도 미만'의 기온에서 선발로 올라온 투수는 총 11명이 있었다(놀라스코, 하랑, 포셀로, 프라이스, 애덤 워렌, 게릿 콜, 카일 헨드릭스, 에디 버틀러, 서베리노 곤살레스). 이들은 5승5패 4.09의 성적을 합작했는데, 가장 크게 무너진 놀라스코(3이닝 6실점)와 프라이스(2.1이닝 8실점)를 제외하면 5승3패 2.24(56.1이닝 14자책)로 한층 성적이 준수해진다(놀라스코와 프라이스는 모두 디트로이트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기간을 늘려 지난 5년간 같은 조건에서 가장 많이 나온 선발투수들을 알아봤다.

2011-15년 기온 10도 미만 최다선발
1. 매스터슨   : 14경기 (6승2패 2.34)
2. 트래비스우드 : 11경기 (5승4패 2.21)
2. 에드윈잭슨  : 11경기 (3승5패 4.14)
4. 제프사마자  : 10경기 (3승5패 2.04)
4. 릭포셀로   : 10경기 (2승4패 6.20)
6. 저스틴벌랜더 : 9경기 (3승1패 2.83)
6. 바르가스   : 9경기 (3승1패 3.51)
6. 제이슨해멀  : 9경기 (4승3패 3.34)

포셀로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은 추운 날씨에도 제 역할을 해줬다. 에드윈 잭슨은 같은 기간 10도 이상의 선발 등판에서 기록한 성적이 33승48패 4.72(109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날씨가 추울 때 보다 좋은 내용의 투구를 선보였다.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투수는 단연 매스터슨이다. 대표적인 땅볼 투수인 매스터슨은 2011-15년 통산 뜬공 비중이 가장 낮은 투수다(25.1%). 추운 날씨에 타구 비거리가 줄어든다는 이론을 적용한다면 매스터슨의 호투는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보스턴에서 릭 포셀로 ⓒ gettyimages/멀티비츠

포셀로의 난조는 더욱 기묘해진다. 높은 땅볼 비중(50.9%)과 낮은 뜬공 비중(27.4%)은 포셀로에게도 볼 수 있는 피칭이기 때문이다. 포셀로는 같은 조건의 10차례 등판에서 세 차례 등판(1이닝 9실점, 5이닝 5실점, 5이닝 8실점 등판)이 성적을 망친 주범이다. 이가운데 두 차례 등판은 바람이 강하게 분 날이었는데(1이닝 9실점 17마일/5이닝 5실점 18마일) 이 부분이 악전고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겔 카브레라가 3루를 지킨 디트로이트 내야진도 포셀로를 도와주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매스터슨과 포셀로의 또 다른 차이는 라인드라이브 비중이다. 포셀로의 라인드라이브 비중이 ML 9번째로 높은 21.6%인 반면, 매스터슨은 가장 낮은 18.8%를 남겼다).

시선을 돌려 이 조건 속 가장 많이 출전한 타자들도 찾아봤다.

2011-15년 영상 10도 미만 최다출전
1. 카스트로  : 67경기 (.323 .385 .431)
2. 페드로이아 : 44경기 (.263 .342 .354)
2. 브랜틀리  : 44경기 (.296 .365 .401)
4. 알렉세이  : 43경기 (.273 .322 .424)
4. 산타나   : 43경기 (.165 .346 .273)
6. 소리아노  : 42경기 (.236 .252 .395)
6. 앤서니리조 : 42경기 (.295 .428 .445)
6. 다윈바니  : 42경기 (.237 .273 .319)

연평균 기온이 27도에 이르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스탈린 카스트로는 추운 날씨에 더 뜨거운 타격감을 뽐냈다. 역시 연평균 기온이 20도가 넘는 쿠바 출신의 알렉세이 라미레스도 추운 날씨에 잘 적응했다. 하지만 또 다른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카를로스 산타나는 추위에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이 두 요소의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것은 <하드볼타임스> 제럴드 시프먼이 증명한 바 있다). 참고로 35경기 이상 나온 14명 가운데 장타율 5할대를 넘어선 타자는 단 한 명 뿐이었다(미겔 카브레라 38경기 .402 .506 .629).

타겟필드가 위치한 미니애폴리스는 가장 높은 4월 평균 기온이 14.4도에 불과하며 가장 낮은 4월 평균 기온은 2.8도까지 떨어진다(웨더닷컴 기준). 애리조나 체이스필드가 있는 피닉스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최고 평균 29.4도/최저 평균 15.6도). 타겟필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장 내 대기를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 하지만 문을 연 2010년 이후 3/4월 통산 홈런 수가 100개를 넘지 못한 팀은 미네소타(95홈런)밖에 없다(ML 1위 양키스 194홈런/NL 3위 애리조나 153홈런).

이처럼 기온은 경기를 좌우하는 또 다른 변수다. 전례를 살펴보면 투수보다 타자가 더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과거 클리프 리는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열을 내는 투수들보다 야수들이 상대적으로 추위에 더 불리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KBO리그 홈런왕은 유난히 추운 동네로 가게 됐다. 더욱이 장타를 노려야 하는 입장이라서 비거리 변화는 더 민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적응기가 필요한 시즌 초반,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암초를 어떻게 헤쳐갈 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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